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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우] 홍재우 교수님 [프레시안] 악마들의 음모. "미국은 훔쳤다 다음은 세계다"
2012-03-29조회수  448ad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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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우 인제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헤게모니 전쟁

결국 '그람시'가 옳았다. 문화라고 통칭되는 한 사회의 주요한 생각, 의지, 행동, 믿음, 관습에 대한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완전한 정치적 승리를 거둘 수 없다. 지배도, 저항도, 전복도 결국 헤게모니의 문제이고 그것이 완결되지 않는 한 이데올로기 사이의 쟁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표적 반신자유주의자인 수전 조지가 <하이재킹 아메리카>(김용규·이효석 옮김, 산지니 펴냄)를 그람시를 인용하며 시작한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수전 조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모국인 미국이 적어도 지난 30년간 우파의 헤게모니 투쟁으로 인해 완전히 변모했고 오늘날의 미국이 그녀의 기억 속에 있던 원래의 '건전한' 미국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녀에 의하면 진보적이며, (최소한) 전통적인 의미의 미국은 종교와 자본 그리고 신자유주의라 불리는 탐욕의 이데올로기 간의 동맹에 의해 납치당해 사라졌다.

착한 미국의 추억

그녀의 기억 속에 있는 '착한' 미국은 어떤 미국이었는가? 두 대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미국은 오랫동안 나라 밖 일에는 무지한 자아도취적 카우보이거나 반대로 양의 탈을 쓴 탐욕스럽고 호전적인 제국주의주자들이었다.

노예제 폐지 이후에도 한 세기 가량 유색인의 완전한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은 나라였고 기회의 땅이라는 타이틀은 수많은 차별에 대한 인내를 지불하며 유지되었다. 지난 세기 중반까지 정치적 마녀사냥인 매카시즘의 광풍이 몰아치던 반쪽자리 공화국이었다.

사실 그녀가 기억하는 진보적이고 좋은 미국의 시절은 그런 어둠의 그림자 속에서 햇빛을 받던 짧은 시기였다. 경제적으로는 FDR의 집권 이후부터, 사회적으로는 최소한 JFK의 등장 이후로 겨우 한 세대를 넘기는 짧은 시기였다. 그 미국은 <타임>이 1965년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들이다"라는 표지를 선보이던 시절에 극에 달했으며 '위대한 사회(the Great Society)'를 주창하는 복지 프로그램과 민권법(Civil Rights Acts)을 제정하던 시대에 찬란히 빛났다.

미국 현대사를 보면 다른 시대와 구별되는 이 시기 미국 사회의 진보적 업적에 놀라게 된다. 명분 없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대, 수세기 동안 뿌리내린 인종적 차별에 대한 저항, 불평등과 가난에 대한 사회적 투쟁을 벌이며 미국은 오래된 건국의 이념과 헌법을 진보적으로 해석하여 국가와 자본에 저항하는 진정한 자유의 가치를 최고조로 올려놓았다.

이 시기 수많은 대법원 판례 속에 나타난 사회적 가치와 신념을 둘러싼 대립의 내용은 역사상 가장 문명화된 투쟁이었고 실천적 승리였다.

"우리는 모두 케인스주의자들이다"

분명히 언급하지는 않지만 저자는 이런 좋은 시대의 미국이 사실 그 공화국의 기원에서 비롯되었다고 믿는 듯하다. 완전한 민주주의를 상상하지는 못했지만 헌법을 설계한 국부(founding fathers)들은 정교 분리의 원칙을 세웠고 (그들은 겉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무신론자들이었다), 종교가 세속에 간섭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그들이 만든 헌법의 권리장전(수정조항)은 끊임없이 진보적으로 해석되어 왔고 미국적 가치의 토대가 되었다. 이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좋은 미국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보기에 불과 한 세대 만에 미국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게 우경화되고 뿌리 깊게 보수화되었다.

선거 결과에 의해 단순히 어느 한 가치 쪽으로 잠시 사회적 선택의 추를 옮긴 것이 아니라 '미국적'인 것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거짓과 탐욕으로 뭉쳐져 있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는 무시되며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반계몽주의 운동은 합리적 지식과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부의 재분배는 형편없어지고 빈곤은 더욱 폭넓게 악화되어 간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이 내재화되고 일상화됨에도 미국의 대중들은 전혀 저항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하이재커들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

<하이재킹 아메리카>는 미국을 변화시킨 자들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이다. 수전 조지는 지난 한 세대 동안, 또 특별히 부시 정권 들어서 미국을 난도질한 세력들에 대한 자료를 엄청나게 모아 신랄한 고발장을 작성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고발장의 내용들이 비밀 문서나 내부 고발자들에 의해 제공된 것이 아니라 적법한 정보 공개 절차를 통해서 혹은 아예 공개적으로 발표된 자료들을 면밀히 살펴서 얻은 것이란 사실이다.

그런 내용은 대부분 수많은 인물들에 대한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유명한 인사들이지만 대개는 외국인으로서는 거의 알기 어렵거나 혹은 미국인들도 쉽게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들의 실명을 전혀 감추려하지 않는다. 매서운 비판도 있지만 이들에 대한 객관적 사실의 기술만으로도 정치적 의미를 드러내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수전 조지의 비판은 당연히 신자유주의의 정신적 지주인 하이에크에 대한 서술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이론적, 철학적 비판에 공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하이에크주의자로 나타난 신자유주의자들과 신보수주의자들이 어떻게 새로운 사상으로 무장하고 이를 광범위하고 뿌리 깊게 보급시켰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이 흐름의 선구적 인물은 네오콘의 대부 어빙 크리스톨이다. 그는 진보적(미국식으로는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과 보수 재단의 지원으로 유지되는 우파의 사상적, 제도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함을 주장했다. 이런 크리스톨 프로그램은 대안적 우파 엘리트 기관을 양성하는데 초점을 맞추었고 이를 수용한 네 자매(Four Sisters) 재단, 즉 '브래들리', '올린', '스미스-리처드슨', '스카이퍼' 같은 대규모 재단은 막대한 자원을 퍼부어 이런 목표를 현실화했다.

저자에 의하면 이들 우파 재단은 진보 재단이 단기적으로 특정한 프로젝트에 치중할 때 자신들의 우파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전파하는 학자, 연구소, 대학, 대중운동 단체에 관대한 아량으로 정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우리 돈으로 수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수십 년 동안 방대하게 제공해 왔다.

여섯 형제(six brothers)라고 불리는 '헤리티지재단', '미국기업연구소', 스탠퍼드의 '후버연구소', '맨해튼 연구소', '카토연구소', '허드슨 연구소' 같은 네오콘 두뇌 집단은 네 자매 재단의 도움을 받아 미국의 진보적 제도를 붕괴시키는데 역할을 커다란 역할을 해왔다. 이들은 우파 정권의 인재 공급처로 성장해왔고 제도 속으로 한발 한발 행진하여 정책 결정 과정 자체를 접수했다.

이들에 키워진 수많은 전문가들은 감세, 낙태 반대, 사회복지 철폐, 소수 인종 우대 정책 폐지, 군비 강화, 팽창적 외교 정책, 민영화 정책들을 성공시키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우파 재단은 대학 신문부터 엘리트 잡지까지 후원하고 우파 연구자들의 특정한 책이나 그들에게 유리한 TV 프로그램의 제작에까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우파 연구 집단의 성과물과 그들에 대한 기사는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등에도 쉴 새 없이 게재되어 왔다. 또 우파 재단은 미국 사회를 좌우하는 강력한 집단인 법조계에도 침투했다. 예를 들어 올린 재단이 후원하며 신자유주의 교리를 전파하는 '연방주의협회'는 3만여 명의 법학 교수와 150개 상위 법과대학의 학생 회원을 갖고 있는데 석유 기업에 손해가 되는 환경법이나 세금 관련 법안 등 각종 규제를 철폐하는데 앞장서며 보수적 연방판사의 임명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제도 속으로 진군하는 우파 연합"

이들 비종교적 신자유주의 우파와 함께 수전 조지는 미국 내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로 이루어진 종교적 우파들에 대해서도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 기독교인의 엄살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생각보다 훨씬 종교적인(기독교적인) 국가이다.

상당수의 미국인은 아직도 세계가 6일 만에 창조되었다고 믿으며 성경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고 성경과 헌법 사이의 선을 분명히 인식하지 못한다. 급기야는 성경에 의해 계산하면 지구의 나이는 4400년이라는 주장을 신뢰하기도 한다.

아담과 이브가 티라노사우르스와 함께 살고 있는 그림이 있는 유레카 스프링스의 기독교 테마 파크는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이들 기독교 근본주의 우파들은 '지적설계론' 혹은 '창조과학'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교육에서 진화론을 대체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들은 기독교 근본주의 교육을 위해 공교육을 공격하며 학교 교육을 포기하는 홈스쿨링 제도를 50개 주에서 합법화시켰다.

점차 교육, 사회 정책, 그리고 외교 정책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위험스런 현실적 영향력은 커지고 있다. 예수 재림이 이스라엘에서 일어나야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를 지지해야 한다는 제리 폴웰 목사의 말은 정책으로 실현되고 있다. 또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기독교인에게 신이 지구의 모든 것을 지배할 권리를 주셨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 등의 인간에게, 특히 거대 자본에게 책임이 있는 환경문제를 쉽게 무시한다. 심지어 이들은 지구 온난화를 오히려 예수 재림의 징조로 환영하기까지 한다.

이들은 다른 종교를 가진 자들을 핍박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포스트모던의 시대에 미국은 아직도 전근대성에 맞서 계몽주의가 싸워야하는 그런 곳으로 남아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내용이 소수 광신자들의 것이 아니라 점차 미국 대중에게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정치권 내부로 깊숙이 침투하고 있다는 것이다. 팻 로버슨 같은 기독교 우파 지도자들은 그 자신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을 뿐 아니라 매일 수백 개의 기독교 TV방송에 나와 미국의 진보 세력을 비판하고 미국에서의 신정정치를 주장한다.

'국가정책자문위원회 CNP'라는 언뜻 보기에 비종교적일 같은 조직은 기금 제공자, 두뇌 집단, 언론, 대중 조직을 은밀하게 연결하며 우파 종교인의 의제를 공화당의 감세, 자유방임주의, 반세속적 진영의 정책과 결합시키고 있다. 공화당 정권의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이들 회의에 참석해 연설했고 부시도 대선을 앞두고 이들의 회의에 참석해 연설을 했다. 비종교적 우파와 마찬가지로 종교적 우파들도 비슷한 양상으로 제도 속으로 들어가 미국의 진보적 가치를 공략하고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계몽에 대한 공격과 반민주 신정정치"

수전 조지는 이들 종교인, 자본가, 이데올로그들의 불순하고 탐욕스런 만남이 네 개의 M, 즉, 자금(money), 미디어(media), 마켓팅(marketing), 경영(management)을 동원하여 "제도 속으로" 장구한 행진을 벌여 미국을 접수하고 납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부시 정권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거짓말, 의회와 삼권분리도 무시하고 인권도 짓밟은 대통령의 권한 등은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행태였다. 권력 기관, 지적 활동, 대중의 우매한 감정적 지지까지 얻은 우파의 하이재킹은 이미 미국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를 짓밟고 있다.

저자는 이들 종교/비종교적 우파들의 작업은 오랫동안 진행되었지만 이미 뿌리 깊게 자리 잡았고 위험한 단계에 이르렀다고 경고한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들이 단지 미국뿐 아니라 세계를 위험에 빠지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와 진보 세력에 대한 경고

이 책의 가장 큰 가치는 두 가지이다. 첫째, 미국의 밖에서 오늘의 미국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미국인이 아닌 사람들이 미국인과 미국을 이해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미국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 더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미국 엘리트들의 행태 뿐 아니라 미국의 대중들이 얼마나 바보같이 되고 있는지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들의 우매한 선택이 세계를 위기에 빠지게 하며 나와 나의 이웃의 목숨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불행하고 마뜩치 않은 일이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미국의 변화에 대해 촉각을 세우는 것은 살아남고, 부분적으로는 그 속에서 잘살기를 원하는 세계인의 처세술이기도 하다.

미국인의 문화가 아무리 세계화 되어도 미국인의 가치와 행동은 우리가 보편적 세계인의 그것이라고 믿는 것과 많이 다르다. 그들은 생각보다 보수적이고, 유럽인들보다 훨씬 그리고 어떤 부분에서는 심지어 우리보다도 더 전통적인 사람들이다. 230년의 짧은 건국 역사에 1000년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이다.

일상 속에서 전혀 찾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청교도의 성스러운 엄숙함과 헌법 설계자들의 세속적 이상이 현실의 삶 속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내미는 그런 나라이다. 때론 이해하기 힘든 이런 나라에 커다란 변화가, 그것도 세계인이 우려하고 있는 변화가 일어났다니 관심을 끌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미국 우파는 한국 우파의 모범인가?

둘째, 무엇보다도 이 책이 전달하고 있는 중요한 가치는 미국의 우경화가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다. 수전 조지는 한국어판 서문에 한국 우파의 "미국 따라하기"는 국내 및 해외 엘리트의 이익을 위해 "힘없는 사람들"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썼다. 무서운 일이다. 한국 사회의 최근 변화에서 미국 우파의 발자취가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의 보수 집단은 유럽의 보수보다는 미국의 신보수와 신자유주의를 롤 모델로 삼은 듯하다. 미국의 신보수가 미국정치의 오랜 제도적 환경에도 불구하고 '대화' 보다는 배제와 적대를 내세운 것처럼 한국의 보수는 상생, 견제, 대화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적 프레임을 안중에 두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정권의 거짓말과 그 거짓을 옹호하는 또 다른 거짓의 과정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는 것도 부시 정권의 예와 유사하다. 진보 세력이 건전한 카운터 파트너로 삼기도 어려운 완전히 다른 가치관을 가진 집단이 권력을 쥐고 있는 셈이다. 우리 역사와 사회에서 건전한 보수의 역사가 부재하기 때문에 이들의 전횡은 더 거칠고 날 것이며 잔혹하다.

또 최근 불거지는 한 사례를 보자. 정부는 중도적 입장을 취하며 보수와 진보가 모두 포함되어 있고 한국에서 유일하게 국제적 경쟁력 있는 연구 집단으로 간주되는 세종연구소를 전경련 산하의 한국경제연구원과 통합하여 거대한 보수 연구소로 전환시키려 하고 있다.

세종연구소에 소속된 진보적 학자를 추방하기 위한 목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여러 보수 재단과 연구소를 벤치마킹한 자본과 보수의 아성을 획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세종연구소의 전신이었으며 전두환이 만든 일해재단이 부활하는 셈이다. 삼성경제연구소 (SERI)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전경련의 지원을 받는 새로운 연구소가 어떤 주장과 정책을 만들어낼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미 한국 사회의 전문가 집단은 각개 약진할 수밖에 없는 진보적 학자들과 엄청난 정부와 자본의 혜택을 받는 보수적 연구자들로 나누어지기 시작했다. 그 중간의 입지는 좁아지기 시작했다. 일반 사회과학자들은 정부가 관장하는 한국연구재단에 대한 종속이 심화되고 있고 정부 비판적인 혹은 제도권적이지 않은 연구는 시행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졌다.

기독교의 보수화 또한 마찬가지다. 민주화 운동에 공이 큰 진보적 기독교계는 날로 위축되는 가운데 아직도 반공이데올로기와 결탁한 상당수 보수 기독교계는 미국 근본주의자들의 사상과 주장을 그대로 수입하고 있다. 미국 거대 전도 단체의 모습을 빼닮은 한국 거대 교회의 세습화, 한국 교회 특유의 프랜차이즈화는 기독교의 세속적 영향력을 확장하는데 기여하고 있다. 이슬람 선교에 대한 독선적 시각 및 무슬림과 이스라엘에 대한 복음주의 교파의 태도는 미국의 그것과 거의 동일하다.

아직은 정교 분리와 세속주의가 강력한 한국 사회에서 이들의 주장이 대중에게 합리적으로 받아드려지지는 않지만 거대 교회를 중심으로 한 인맥의 정치적 진출은 현 정부 들어 위험 수위까지 다다랐다. 다른 종교에 대한 암묵적 무시와 배제를 둘러싼 의심도 커져가고 있다. 종교적 갈등이 거의 없으며 종교 간 평화가 놀라울 정도였던 한국 사회에 보수 기독교의 극단적 가치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이런 한국 우파의 미국 모방하기 과정 속에서 한국의 진보 세력은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왜 보수를 지지하면 안 될 것 같은 중산층 이하의 대중들이 왜 보수에 표를 던지는가에 대해 답답해하고 의아해 하고만 있을 것인가? 문화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전투는 한국 사회에서 보수 우익에 의해 시작되었다.

미국과 유사하게 그들은 좌파가 대학, 연구소, 예술계, 언론을 장악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공세를 취하고 있다. 진보 세력은 공정한 경쟁에 호소하고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지만 보수우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어떤 장기적 과제를 만들어 사회를 변화시킬지에 대해 역설적이긴 하지만 미국의 우파들은 오늘날 한국의 진보 세력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준다.

아쉬운 것들

이 책에서 아쉬운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방대한 자료를 포괄하고 엄청난 정보를 제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2% 부족한 느낌이다. 왜냐하면 저자가 제공하는 많은 '사실'이 실제로 어떻게 거대한 음모의 계획 하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는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음모론은 장막 뒤에 가려진 어떤 사악한 실체가 존재하는 것처럼 말한다.

만약 미국을 끔찍하게 만든 그런 사악하고 일체화된 공모의 실재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 몇몇 우파의 지식인들과 행동가들이 오랫동안 문화투쟁에 대한 주장을 해왔고 이를 행동에 옮겼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돈이 많이 쏟아 부어졌다는 것으로도 부족하다.

엄정한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 책이 고발하는 내용은 인과관계에 대한 이론이 부재하고 현상만 무리지어 나열하고 있는 셈이다. 어떤 원동력이 그런 우파의 계획을 가능하게 했는지, 우파의 전략은 왜 성공적이었는지는 설명하지 못한 공백 상태로 남아있다. 차라리 인지과학에 기반 하여 우파의 전략을 분석한 조지 레이코프의 연구가 더욱 설득력 있다.

저자는 충격적인 사실들을 이데올로기-종교-학문-기업이라는 몇 가지 프레임에 넣어서 전달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프레임을 정교하게 엮어 나가는 데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물론 그런 과정을 완전히 성공하기는 무척 어렵고 얼마나 긴 시간과 자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런 부족함 때문에 이 책의 가치가 저하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것을 입증하고 대응해야할 과제는 오히려 이 책이 세상에 요구하는 몫이기도 하다.

학문적 입증은 부족하지만 세상을 향해 과제를 던졌다

둘째, 좌파 재단과 연구 집단에 대한 부분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수전 조지는 보수화를 방조한 좌파들을 충분히 비판하지 않고 있다. 그녀는 보수화된 미국 중산층 이하의 대중이 1960년대의 진보적 세대가 1990년대를 관통하며 금융과 IT혁명으로 백만장자가 되었다는 사실에 커다란 위선과 배신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소위 머리와 윤리는, 미국식으로, 리버럴하고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이고 생활은 부유한 "캐딜락을 탄 좌파"에 대한 혐오가 어떻게 미국을 보수 근본주의자와 신자유주의들의 행복한 사냥터로 만들었는지 말하고 있지 않다. 즉, 미국 진보 세력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 빠진 것이 아쉽다.

진보파에 대한 미국 민중의 인식이 비록 우파 이데올로기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도 진보 세력의 방심과 방만, 탐욕과 부패 그리고 배신과 위선의 문제 또한 오늘날의 미국을 만드는데 일조한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책의 안팎에서

이 책은 두 명의 역자가 번역 작업을 했다. 공동 역자의 책이 흔히 겪는 문체의 변화나 표현의 혼란스러움을 크게 느낄 수 없었던 것은 역자들이 시간을 두고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뜻이다. 사회과학 번역서들의 경우에는 번역 전문가가 아니라 해당 분야 전문가의 번역으로 거친 직역투의 문장이 많은데 이 번역은 그런 읽기의 부담감이 거의 없다.

아주 사소한 오역들, 예를 들면 하원 의장(the Speaker of the House of Representatives)을 하원 대변인으로 번역한 것(80쪽) 등을 제외하면 매우 깔끔하고 맛깔스런 느낌의 번역이다. 게다가 미국 사회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을 위한 적절한 역자 주(註)도 칭찬해주고 싶다.

사족으로 출판사에 대해 몇 마디 덧붙이고자 한다. 산지니 출판사는 이 책을 받아보기 전까지 전혀 알지 못하던 출판사였다. 하지만 출간 도서 목록을 보니 수전 조지의 다른 책()를 비롯하여 미국과 국제 문제에 대한 진보적, 비판적 서적이 많았다.

무엇보다, 드물게도 부산에 위치한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로서 부산과 부산의 예술, 문화, 인문지리에 대한 서적을 발행해온 모양세가 보통의 뚝심과 내공이 있는 출판사는 아닌 듯하다. 지역에서 세계를 아우르는 출판사가 되어주길 기대해본다
 
<2010.08.27. 원문은 제목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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